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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심리

[고도를 기다리며] 포조와 블라디미르의 존재 불안과 부조화의 심리학적 해석

[고도를 기다리며] 포조와 블라디미르의 존재 불안과 부조화의 심리학적 해석

 

사무엘 베케트의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Waiting for Godot)]는 20세기 부조리극의 대표작으로, 인간 존재의 무의미와 불안을 극적으로 드러낸 작품이다. 줄거리와 사건의 전개가 거의 없는 이 희곡은 두 인물,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곤이 정체불명의 인물 ‘고도’를 기다리며 나누는 대화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여기서는 포조와 블라디미르를 중심으로 살펴보며, 그들의 대화를 통해 드러나는 존재 불안(existential anxiety)과 부조화(dissonance)의 구조를 심리학적으로 분석하고자 한다.

[고도를 기다리며]는 단순히 무대 위의 대화극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실존적 고독의미 없는 기다림 속의 불안을 상징하는 텍스트다. 특히 포조와 블라디미르의 내적 불안은 현대 사회의 인간들이 겪는 공허감과 닮아 있다.

 

 

1. 작품 개관: 기다림과 무의미

[고도를 기다리며]의 줄거리는 단순하다.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곤은 ‘고도’를 기다리지만, 그는 끝내 나타나지 않는다. 이 기다림은 두 번 반복되며, 희곡은 아무런 결론 없이 끝난다. 그 사이 등장하는 포조와 그의 하인 럭키, 그리고 다시 나타나는 포조는 기다림의 무의미와 인간 존재의 허무를 더욱 부각시킨다.

고도를 기다리는 시간은 실제 사건이 일어나지 않기에 정지된 시간이며, 이 정지된 시간 속에서 인물들은 존재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불안과 혼돈에 빠진다.

 

 

2. 포조와 블라디미르: 존재 불안의 두 얼굴

1) 블라디미르의 불안

블라디미르는 작품 속에서 끊임없이 고도의 의미와 존재를 묻는다. 그는 에스트라곤보다 조금 더 이성적이며, 기다림에 대해 논리적 근거를 찾으려 한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답은 나오지 않는다.

이는 실존적 불안의 전형적 모습이다. 실존 철학자 하이데거가 말한 던져짐(Geworfenheit)’처럼, 블라디미르는 이유도 모른 채 삶에 던져져 의미를 찾으려 애쓰지만, 끝내 의미 없는 기다림 속에 머문다.

2) 포조의 불안

포조는 처음 등장할 때 권위적이고 자기 확신에 차 있지만, 두 번째 등장에서는 시각을 잃고 무력한 인물로 나타난다. 그의 변화는 인간 존재의 덧없음과 권력·지위의 무의미함을 상징한다.

포조의 불안은 권력에 의존하는 불안이다. 그는 럭키를 지배하며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지만, 시력을 잃은 순간 모든 것이 무너진다. 이는 외적 통제에 의존한 자아가 얼마나 쉽게 붕괴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3. 존재 불안의 심리학적 해석

1) 공허와 무의미

블라디미르와 포조 모두 기다림 속에서 공허와 무의미를 경험한다. 이는 심리학자 빅터 프랭클이 말한 실존적 공허(existential vacuum)와 연결된다. 인간이 삶의 목적이나 의미를 상실할 때 느끼는 공허와 불안은, 이 희곡의 핵심적 정서다.

2) 불안의 세 가지 차원

  • 개인적 불안: 삶의 의미를 상실한 개인의 혼란 (블라디미르)
  • 사회적 불안: 권력과 지위에 의존하던 자아의 붕괴 (포조)
  • 초월적 불안: ‘고도’라는 존재가 끝내 나타나지 않는다는 사실에서 비롯된, 초월적 의미의 부재

3) 무력감과 무의지

심리학적으로 블라디미르와 포조는 모두 학습된 무력감(learned helplessness)의 상태에 가깝다. 아무리 기다려도 변화가 없다는 사실은 결국 행동 의지를 빼앗고, 이들은 수동적으로 머물 수밖에 없다.

 

 

4. 부조화(dissonance)의 구조

1) 인지부조화의 심리

레온 페스팅거의 인지부조화 이론에 따르면, 사람은 신념과 현실이 불일치할 때 불편감을 느끼며, 이를 해소하기 위해 신념을 조정하거나 현실을 합리화한다.

  • 블라디미르: “고도가 반드시 올 것이다”라는 신념을 유지하려 하지만, 고도가 오지 않음 → 불안 증폭
  • 포조: 권력과 통제를 통해 자신이 의미 있는 존재임을 믿으려 하지만, 시력을 잃으며 현실과 충돌 → 자기 존재에 대한 불안 심화

2) 관계적 부조화

포조와 블라디미르의 관계 역시 부조화를 드러낸다.

  • 블라디미르는 의미를 찾으려는 지적 탐구에 의존한다.
  • 포조는 권력과 통제에 의존한다.

그러나 두 방식 모두 실패하며, 결국 두 인물은 같은 불안의 늪에 빠진다.

3) 부조화 해소의 실패

이들은 불편감을 해소하기 위해 합리화하지만, 근본적으로 변화는 없다. 이는 부조리극이 보여주는 핵심: 인간은 의미 없는 세계 속에서 끝내 해답을 찾지 못한다는 진실이다.

 

 

5. 프로이트와 융의 심리학적 해석

프로이트적 해석

  • 포조: 원초아(Id)의 충동, 즉 권력 욕망과 지배 본능에 의존하지만, 시력을 잃으며 초자아(Superego)의 한계에 부딪힌다.
  • 블라디미르: 자아(Ego)로서 이성과 논리를 유지하려 하지만, 고도의 부재는 자아를 무력화시킨다.

이 두 인물의 갈등은 원초아, 자아, 초자아의 불균형이 불안을 낳는 과정을 보여준다.

 

융적 해석

융의 관점에서, 고도는 자기(Self)의 완전성 혹은 초월적 의미를 상징한다. 그러나 고도가 나타나지 않음으로써 인물들은 그림자(Shadow)와 직면한다. 포조는 권력에 의존하는 그림자와, 블라디미르는 무의미를 두려워하는 그림자와 맞서지만, 끝내 이를 통합하지 못한다.

 

 

6. 현대 사회와의 연결

[고도를 기다리며]의 부조리와 불안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1) 끝없는 기다림의 현대인

현대인은 더 나은 직업, 더 많은 돈, 더 나은 인간관계를 기다리며 살아간다. 그러나 그 기다림의 끝에 원하는 것이 반드시 올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이는 블라디미르의 기다림과 닮아 있다.

2) 권력과 지위에 의존한 불안

포조처럼 사회적 지위와 권력에 의존해 자아를 유지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잃는 순간 극심한 불안에 빠진다. 현대 사회의 퇴직자 우울증이나 지위 상실에 따른 무력감은 포조의 모습과 겹친다.

3) 존재 불안과 정신 건강

오늘날 많은 이들이 불안장애, 우울증, 번아웃에 시달린다. 이는 의미 없는 기다림과 무력감에서 비롯된 실존적 공허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결론: [고도를 기다리며]가 던지는 심리학적 교훈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포조와 블라디미르는 단순한 인물이 아니다. 그들은 존재 불안부조화를 체현하며, 인간이 의미 없는 세계 속에서 겪는 내적 고통을 상징한다.

  • 블라디미르는 의미를 찾으려 하지만 끝내 실패하며, 실존적 불안을 드러낸다.
  • 포조는 권력에 의존하지만, 결국 무력해지며 외적 통제의 덧없음을 보여준다.
  • 그들의 부조화는 인간이 불안과 모순 속에서 해답을 찾지 못하는 실존적 조건을 상징한다.

이 작품은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무엇을 기다리며 살아가는가?”
“그 기다림이 끝내 무의미할지라도, 살아갈 이유를 찾을 수 있는가?”

[고도를 기다리며]는 인간 존재의 불안을 가감 없이 드러내며, 의미 없는 기다림 속에서도 인간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성찰하게 만드는 불멸의 고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