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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심리

[카스테라]에 담긴 창작자 불안과 사회적 소속 욕구 심리 분석

[카스테라]에 담긴 창작자 불안과 사회적 소속 욕구 심리 분석

 

박민규 작가의 단편소설 [카스테라]는 일견 허무맹랑한 상상력으로 가득 찬 초현실적 작품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인간의 본질적 욕구, 특히 창작자 불안사회적 소속 욕구에 대한 깊은 통찰이 담겨 있다. 이 글에서는 [카스테라]를 중심으로 창작자가 겪는 내면의 불안과 외부 세계로부터의 단절, 그리고 공동체 안에서의 소속감 욕구를 심리학적으로 고찰하고자 한다.

 

 

1. 창작자 불안이란 무엇인가?

창조적 욕망 속의 불안

창작자 불안(Creator Anxiety)이란, 창작 활동 과정에서 느끼는 심리적 불안, 자기 의심, 무가치감, 사회적 평가에 대한 두려움을 말한다. 예술가나 작가들은 자신의 내면 깊은 곳에서 무언가를 끄집어내 표현해야 한다는 강박을 느끼며, 이 과정에서 자신의 정체성과 가치에 대한 불안을 경험한다.

박민규의 [카스테라]는 이와 같은 불안을 작품의 형식 자체로 드러낸다. 이야기 속 화자는 자신만의 세계관을 펼치며 현실과 환상, 자기 안의 불안과 외부의 소외를 교묘하게 엮는다. 특히 작품 초반부의 설정—냉장고의 전생이 훌리건이었다는 황당무계한 진술—은 비현실성을 통해 현실을 더욱 날카롭게 비판한다. 이러한 접근은 창작자의 상상력과 현실의 간극에서 발생하는 불안을 은유적으로 보여준다.

 

 

2. 냉장고는 불안의 은유인가?

일상 속 환상, 환상 속 진실

작품에서 냉장고는 단순한 가전제품 이상의 존재다. 모든 것을 삼키고, 소리를 내며, 주인공의 삶을 둘러싼 고요한 배경이자 소음이기도 하다. 냉장고는 화자가 말을 걸고 의지하는 대상이자, 때로는 고립된 공간을 상징하는 매개체가 된다.

이 냉장고는 창작자가 처한 심리적 상태를 비유적으로 보여주는 장치다. 한 사람의 상상력이 현실과 충돌하며 빚어내는 창작의 고독, 내면의 소음, 그리고 침묵의 압박감은 냉장고라는 매개를 통해 독자에게 전달된다. 창작자는 늘 세상과 자신 사이의 거리를 느끼며, 그 간극을 상상력으로 메우려 한다. 그러나 상상력은 때로 외로움과 동반되며, 이 둘은 냉장고라는 '차가운 상자' 속에 함께 보관된다.

 

 

3. 창작자의 고립과 ‘카스테라’의 의미

부드럽고 따뜻한 기억의 잔재

[카스테라]라는 제목은 작품의 말미에 등장하는 실제 ‘카스테라 한 조각’과 연결되며, 상징적 역할을 한다. 이 카스테라는 과거의 따뜻했던 시절, 누군가와 함께 했던 순간, 혹은 인간다운 온기와 연결된다. 이는 냉장고와 대조적인 이미지로, 차가운 현실 속에서 창작자가 갈망하는 감정의 복원, 인간적 교감을 암시한다.

창작자는 자기만의 세계에 갇히기 쉽고, 사회와의 연결 고리가 약화될수록 불안은 심화된다. 그런 그에게 '카스테라'는 부드럽고 달콤한, 세상과 다시 연결될 수 있는 희망의 상징이다. 이는 곧 창작자의 불안이 사회적 소속 욕구와 얼마나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4. 사회적 소속 욕구와 인간 심리

우리는 왜 ‘어딘가’에 속하고 싶어하는가?

심리학자 아브라함 매슬로우의 욕구 5단계 이론에서, 인간은 생리적 욕구와 안전 욕구 다음으로 사회적 소속과 애정의 욕구를 추구한다. 이는 단지 가족, 친구, 공동체의 일원이 되기를 바란다는 수준을 넘어, 타인에게 인정받고 의미 있는 관계를 맺으려는 심리적 본능이다.

[카스테라]의 화자는 명확한 공동체에 속해 있지 않다. 그는 어떤 정치적 소속도, 가정의 정서적 울타리도, 사회의 정규 조직에도 포함되어 있지 않다. 이 고립감은 창작자로서의 불안을 더욱 가속화시킨다. 사회적 연대의 부재는 정체성의 붕괴심리적 무력감으로 이어진다.

냉장고 안에 모든 것을 넣고 싶어 하는 욕망은, 사실상 외부 세계와 다시 연결되고 싶은 소속 욕구의 왜곡된 형태다. 타인과의 유대는 사라지고, 대신 ‘냉장고’라는 가상의 안전지대를 통해 자신을 지키려 한다. 그러나 이는 일시적인 해소에 불과하며, 결국 인간은 진짜 사람들과의 연결 속에서만 진정한 소속감을 경험할 수 있다.

 

 

5. 창작자 불안과 소속 욕구의 교차점

[카스테라]는 창작자 불안과 소속 욕구가 같은 뿌리에서 발생함을 보여준다. 창작자는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존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사회적 피드백과 인정, 감정적 교류 없이는 버티기 힘든 존재다. 이는 예술가가 자신만의 언어로 세상과 소통하려는 이유이며, 그들의 작업이 내면의 고립과 세상에 대한 욕망 사이를 부유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냉장고라는 상징적 장치는 화자의 고립을 보여주는 동시에, 창작자의 욕망과 공포가 만나는 지점이다. 그는 냉장고 안에 모든 것을 보관하려 하고, 그 속에서 ‘카스테라’라는 기억을 꺼낸다. 이는 차가움 속의 따뜻함, 불안 속의 소망, 단절 속의 연결이라는 복합적인 정서를 나타낸다.

 

 

결론: [카스테라]는 단지 기이한 소설이 아니다

박민규의 [카스테라]는 엉뚱하고 초현실적인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그 속에는 우리가 겪는 심리적 불안, 창작의 고통, 외로움, 연결의 갈망이 진하게 녹아 있다. 특히 현대 사회에서 소외감을 느끼는 창작자, 프리랜서, 예술가들에게 이 작품은 거울이자 위로가 된다.

[카스테라]는 차가운 냉장고 안에서도 따뜻한 기억이 존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말한다. 그리고 그 기억은 우리가 세상과 연결될 수 있다는 희망, 누구나 어딘가에 소속될 수 있다는 가능성으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