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작품 개요 및 줄거리 요약
이문열의 중편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1987)은 초등학교 교실이라는 제한된 공간을 통해 한국 사회의 권력 구조와 개인 심리를 날카롭게 풍자한 작품입니다. 이야기의 화자는 4학년 1학기에 시골 학교로 전학 온 ‘나’입니다. 전학 온 교실에는 엄석대라는 절대적인 권위를 지닌 반장이 존재합니다.
엄석대는 규율을 세우고 질서를 유지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반 친구들을 통제하고, 필요에 따라 편애와 차별을 합니다. 처음 전학 온 ‘나’는 이 권력 구조에 저항하려 하지만, 곧 실패하고 석대의 체계에 적응해 버립니다. 결국 6학년이 되어 석대가 전학을 가면서 그 질서는 허물어지고, 나중에 성인이 된 화자는 어린 시절의 경험이 자신 안에 깊이 각인되어 있음을 깨닫습니다.
이 작품은 표면적으로는 학급 내 권력 관계를 다루지만, 본질적으로는 권위 앞에서 인간이 어떻게 복종하게 되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심리가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묘사합니다.
2. 권위와 복종의 심리학 개념
1) 권위(authority)의 본질
사회심리학에서 권위란 특정한 지위나 역할이 부여하는 영향력을 의미합니다. 권위는 공식적인 제도나 직책에서 비롯될 수도 있고, 비공식적 집단 내에서 카리스마, 정보력, 물리적 힘 등을 통해 형성될 수도 있습니다. 엄석대는 반장이라는 공식적 지위에 더해, 신체적 우위, 언변, 집단 장악 능력을 통해 절대 권위를 구축합니다.
2) 복종(obedience)의 심리
복종은 권위자가 내리는 명령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스탠리 밀그램(Stanley Milgram)의 복종 실험(1963)은 사람들이 권위자의 지시에 따라 자신의 도덕적 기준을 넘어서는 행동까지 하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교실이라는 제한된 사회에서, 반장의 명령은 교사의 묵인과 다수의 동조로 ‘절대적’이 됩니다.
3) 집단 압력과 동조
솔로몬 애쉬(Solomon Asch)의 동조 실험처럼, 다수가 특정 의견을 공유하면 개인은 자신의 판단을 포기하고 집단에 동조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반 아이들이 모두 엄석대의 체계에 순응할 때, ‘나’의 저항은 고립을 의미하며, 이는 심리적 부담을 키웁니다.
3. 작품 속 권위와 복종 심리 분석
1) 권위의 구축: 두려움과 보상
엄석대의 권위는 두 축으로 유지됩니다.
- 두려움(Fear): 석대는 규칙을 어기거나 자신의 권위를 거스르는 학생에게 공개적인 제재를 가합니다. 이 처벌은 단순한 징계가 아니라, 타인에게 본보기가 되는 공개적 행위로서 집단 전체의 경각심을 높입니다.
- 보상(Reward): 동시에 석대는 충성스러운 학생에게 편의와 혜택을 줍니다. 이는 스키너(B.F. Skinner)의 조작적 조건형성 이론과 연결되며, 보상과 처벌이 함께 작용할 때 권위의 효율은 극대화됩니다.
2) 저항에서 순응으로
처음 전학 온 ‘나’는 석대의 방식이 부당하다고 느끼고 저항합니다. 그러나 교사의 무관심, 친구들의 동조, 그리고 고립의 불편함 속에서 결국 적응하게 됩니다. 이는 인지부조화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나는 정의롭다’는 신념과 ‘권위에 순응한다’는 행동의 불일치가 불편감을 유발하자, ‘석대의 방식이 효율적이다’라는 식으로 신념을 수정하며 심리적 균형을 맞춥니다.
3) 복종의 심리적 이점
아이러니하게도, 복종은 단기적으로 심리적 편안함을 줍니다. 석대의 체계에 순응하면, 집단 내 안전과 소속감을 얻을 수 있고, 개인의 결정 부담이 줄어듭니다. 이는 권위주의적 성격(authoritarian personality)에서 보이는 심리적 패턴과 유사합니다.
4) 권위의 붕괴와 공백
6학년이 되어 석대가 전학을 가자, 반은 혼란에 빠집니다. 이는 사회적 구조의 붕괴 후 공백(anomie) 현상을 보여줍니다. 그동안 석대의 권위가 유지하던 질서는, 비록 불공정했더라도 안정감을 제공하고 있었음을 드러냅니다.
4. 심리학 연구 사례 연결
- 밀그램의 복종 실험
참여자들은 권위자의 지시에 따라 실험 대상자에게 강한 전기 충격을 가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적 불편감에도 불구하고 권위자의 지시를 따랐습니다. 이는 ‘나’가 석대의 권위에 복종하게 된 과정과 유사합니다. - 애쉬의 동조 실험
단순한 선의 길이를 맞히는 문제에서도, 다수가 틀린 답을 선택하면 개인은 자신의 판단을 바꿉니다. 교실에서의 ‘나’ 역시 다수의 순응 압력에 굴복했습니다. - 권위주의적 성격 연구(아도르노)
권위주의적 성격을 지닌 사람들은 권위자에게 복종하고, 약자에게는 강압적입니다. 석대의 행동 패턴과 집단의 반응이 이를 보여줍니다.
5. 결론 및 독자에게 던지는 질문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단순히 어린 시절의 학급 이야기가 아니라, 권위가 어떻게 형성되고, 복종이 어떻게 학습되는지를 보여주는 사회심리학적 실험장과 같습니다. 작품 속 ‘나’는 정의로운 저항에서 순응으로, 그리고 그 경험을 성인이 되어서도 회상하는 인물로 변합니다. 이는 권위에 대한 초기 경험이 성격과 가치관에 깊게 새겨질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이 소설은 독자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 우리는 지금 어떤 권위에 복종하고 있는가?
- 그 권위는 정당한가, 아니면 익숙함과 두려움 때문에 유지되는가?
- 불의한 권위 앞에서 우리는 저항할 용기를 가질 수 있는가?
권위와 복종의 심리는 교실뿐 아니라 가정, 직장, 사회 전반에 걸쳐 반복됩니다. 이문열의 작품은 이 불편한 진실을 직시하게 하며, 우리 각자가 지금 속한 권력 구조 속에서 어떤 선택을 하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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