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작품 개요 및 줄거리
김애란의 단편소설 [달려라, 아비]는 부재한 아버지와 그 아버지를 향한 아들의 감정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주인공 ‘나’는 어린 시절 아버지가 가족을 떠난 이후, 어머니와 함께 살아왔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희미하고, 대부분 어머니의 말이나 주변인들의 이야기를 통해 전해집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아버지가 다른 지역에서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오랜 공백 끝에 다시 마주하게 된 아버지는 과거의 이상적인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고, 낯설며, 심지어 초라하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짧은 재회 이후, ‘나’는 아버지를 향해 달려가는 장면으로 이야기는 마무리됩니다.
작품은 단순한 부자 상봉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는 세대 간의 단절과 갈등, 그리고 주인공이 겪는 자아정체성의 혼란이 깊게 깔려 있습니다.
2. 세대 갈등 분석
2-1. 부재한 아버지와 권위의 붕괴
전통적으로 한국 사회에서 ‘아버지’는 권위와 규율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러나 [달려라, 아비] 속 아버지는 가족을 떠나 부재했던 존재입니다. 이로 인해 ‘나’의 세계에서 아버지는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고, 상징적 권위마저 상실합니다. 이는 부권의 해체를 의미하며, 세대 간의 연결 고리가 끊어지는 계기가 됩니다.
2-2. 세대 간 경험의 차이
아버지가 살아온 시대와 ‘나’가 살아가는 시대는 사회·경제적 환경이 크게 다릅니다. 아버지는 자신의 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해 가족을 떠나는 선택을 했을 수 있지만, 그 맥락은 ‘나’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습니다. ‘나’는 아버지를 개인적인 결핍과 상처의 원인으로만 받아들이게 되고, 세대 간의 이해는 더욱 멀어집니다.
2-3. 심리적 거리와 갈등
심리학적으로, 세대 갈등은 단순히 나이 차이가 아니라 가치관·세계관의 충돌에서 비롯됩니다. 아버지는 자신의 침묵과 무책임을 ‘필요한 선택’으로 여길 수 있지만, 아들은 그것을 ‘버림’과 ‘배신’으로 느낍니다. 이 차이는 단순한 가족사 문제가 아니라, 서로 다른 역사와 경험이 만들어낸 심리적 간극입니다.
3. 자아정체성 혼란 분석
3-1. 아버지의 부재와 정체성 결핍
에릭 에릭슨(Erik Erikson)의 심리사회적 발달 이론에 따르면, 청소년기와 성인 초기는 자아정체성 형성이 중요한 시기입니다. 이때 부모, 특히 동일시의 대상이 되는 아버지의 부재는 자아정체성 확립에 큰 공백을 만듭니다.
주인공 ‘나’는 아버지의 부재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구축해야 했고, 그 과정에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명확히 답하지 못합니다.
3-2. 이상화와 현실의 괴리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는 ‘나’는 상상 속에서 아버지를 이상화합니다. 그러나 재회한 아버지는 그 기대를 무너뜨립니다. 이상화된 부모상과 현실의 불일치는 심리적 혼란을 야기하며, 이는 곧 자기 동일성의 동요로 이어집니다.
3-3. ‘달려감’의 심리적 의미
이야기 말미, ‘나’는 아버지를 향해 달려갑니다. 이는 단순한 물리적 행동이 아니라, 자아 통합을 향한 움직임입니다. 비록 아버지가 실망스러운 현실을 보여줬더라도, 그 존재를 받아들이는 행위는 자신의 뿌리를 인정하고 통합하는 과정의 시작입니다.
4. 심리학 이론 연결
4-1. 대상관계이론(Object Relations Theory)
멜라니 클라인과 도널드 위니컷의 대상관계이론에 따르면, 개인의 자아는 중요한 타인(대상)과의 초기 관계를 통해 형성됩니다. 주인공은 아버지와 안정적인 관계를 맺지 못했기에, 내면에 결핍과 불안을 품고 성장했습니다. 아버지와의 재회는 이 결핍을 메우려는 무의식적 시도로 볼 수 있습니다.
4-2. 애착이론(Attachment Theory)
존 볼비(John Bowlby)의 애착이론에서는 부모와의 안정적 애착이 성인기 대인관계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합니다. 주인공은 아버지의 부재로 인해 ‘불안정-회피형 애착’ 성향을 보입니다. 그는 아버지를 만나기 전까지는 무관심한 듯하지만, 막상 대면하면 본능적으로 그를 향해 달려갑니다. 이는 억압된 애착 욕구가 드러난 순간입니다.
4-3. 세대 간 전이(Intergenerational Transmission)
가족 심리학에서는 세대 간에 가치, 행동 양식, 심리적 상처가 전이된다고 봅니다. 아버지의 선택과 부재 경험은 주인공에게 직접적 상처를 주었고, 이는 그의 대인관계와 삶의 태도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5. 결론 및 성찰
[달려라, 아비]는 단순한 부자 재회의 이야기가 아니라, 세대 간의 단절, 가치관의 충돌, 그리고 자아정체성 혼란을 다룬 심리학적 텍스트입니다. 주인공의 아버지는 과거의 상징이며, 그와의 관계는 주인공이 자신의 뿌리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통합할 것인지를 결정짓는 중요한 변수입니다.
작품의 마지막에서 주인공이 아버지를 향해 달려가는 장면은, 미완의 화해이자 자아 통합을 향한 첫걸음입니다. 비록 아버지가 이상적인 모습이 아니더라도, 그 존재를 인정하는 것은 자기 정체성을 찾는 데 필수적입니다.
독자인 우리는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볼 수 있습니다.
- 나는 나를 형성한 뿌리와 과거를 얼마나 받아들이고 있는가?
- 세대 간의 차이를 이해하려는 노력 대신, 단절과 비난 속에 머물고 있지는 않은가?
- 나의 자아정체성은 어느 정도까지 부모 세대의 그림자 속에 있는가?
[달려라, 아비]는 세대 갈등이 단순히 사회 구조나 시대 문제에서 끝나지 않고, 개인의 내면 깊숙이 자리 잡아 평생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그것을 극복하는 시작은, 달려가는 용기에서 비롯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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