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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심리

[삼포 가는 길] 속 상실과 귀향 본능, 노스탤지어의 심리학적 접근

[삼포 가는 길] 속 상실과 귀향 본능, 노스탤지어의 심리학적 접근

 

 

1. 서론: 귀향을 꿈꾸는 인간의 심리

황석영의 소설 [삼포 가는 길]은 산업화 시대의 한복판에서 고향을 떠나 도시로 흘러든 인물들의 여정을 통해 인간의 근원적 귀향 본능과 상실감을 그린 작품이다. 작품의 줄거리는 단순하다. 감옥에서 나온 노동자, 공사장에서 일하다 떠도는 노동자, 그리고 한 여성이 함께 삼포라는 고향으로 향하는 길을 걷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 단순한 여정 속에는 산업화로 인한 삶의 상실, 정체성의 흔들림, 귀향을 갈망하는 인간의 심리가 응축되어 있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속할 수 있는 곳, 자신을 온전히 받아주는 공간을 원한다. 현대 심리학에서 이는 애착 욕구, 귀향 본능, 그리고 노스탤지어(Nostalgia)라는 개념으로 설명될 수 있다. [삼포 가는 길]은 단순히 세 인물이 고향을 찾아가는 물리적 여정이 아니라, 삶의 의미와 정체성을 되찾으려는 내적 귀환의 여정을 보여준다.

 

 

2. 작품 줄거리 개요

주인공 정씨와 영달은 우연히 길에서 만난 여성 백화를 동행하며 고향인 삼포로 향한다. 그들은 서로 다른 배경을 지녔지만, 모두 도시에서 삶의 뿌리를 잃고 떠도는 사람들이다.

삼포는 그들에게 단순한 지명이 아니라, 상실된 고향, 되찾고 싶은 정체성, 그리고 위로의 공간을 의미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작품의 결말에서 드러나는 것은, 고향조차 더 이상 예전의 고향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산업화는 삼포조차 변화시켜, 귀향의 의미마저 빼앗아 버린다.

이 지점에서 독자는 인간이 추구하는 귀향과 상실의 역설적 본질을 마주하게 된다.

 

 

3. 심리학적 개념 ① 상실의 심리

3-1. 애착의 상실

심리학자 존 볼비(John Bowlby)는 애착 이론을 통해 인간이 안정적인 애착 대상을 잃었을 때 겪는 상실과 불안의 과정을 설명했다. [삼포 가는 길] 속 인물들은 농촌이라는 애착의 원형을 상실했다. 그곳은 그들에게 정체성을 보장하고, 소속감을 제공했던 곳이다.

하지만 도시에서의 삶은 불안정하고, 관계는 일시적이다. 이로 인해 등장인물들은 항상 불안과 소외 속에 머무른다. 애착의 상실은 곧 존재적 불안을 불러온다.

3-2. 산업화와 상실 경험

심리학적으로 상실은 단순히 죽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삶의 기반, 정체성, 공동체를 잃는 것 또한 상실의 경험이다. [삼포 가는 길]의 인물들은 고향을 떠난 순간부터 지속적인 상실의 고통을 경험하며 살아간다.

이러한 경험은 우울, 무력감, 자기 효능감의 저하로 이어진다. 그들이 고향으로 향하는 길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상실된 자아를 회복하려는 심리적 투쟁이다.

 

 

4. 심리학적 개념 ② 귀향 본능

4-1. 프로이트와 회귀 욕구

프로이트는 인간이 불안을 경험할 때, 안전했던 과거로 돌아가려는 심리를 ‘회귀’(Regression)라 설명했다. [삼포 가는 길] 속 귀향 본능은 바로 이 회귀 욕구의 집단적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정씨, 영달, 백화는 모두 불안정한 현재에서 벗어나 안전과 위로의 원형적 공간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고향은 그들에게 단순한 장소가 아니라, 심리적 자궁으로 기능한다.

4-2. 융의 집단 무의식과 원형

융(C. G. Jung)의 관점에서 고향은 ‘원형(archetype)’으로서 인간의 무의식 속 깊이 자리한 상징이다. 집, 고향, 땅은 모두 안전과 귀속을 상징하며, 귀향 본능은 곧 무의식적 안정 욕구의 표현이다.

[삼포 가는 길] 속 여정은 곧 집단 무의식 차원의 귀향 욕구를 드러내는 여정으로 해석할 수 있다.

 

 

5. 심리학적 개념 ③ 노스탤지어의 심리

5-1. 노스탤지어란 무엇인가?

노스탤지어는 단순한 향수가 아니다. 그것은 과거의 기억을 통해 현재의 불안을 완화하고, 자아를 안정시키려는 심리적 기제다. 사회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노스탤지어는 외로움과 고립감을 줄이고, 삶의 의미를 회복하는 데 도움을 준다.

5-2. [삼포 가는 길]과 노스탤지어

등장인물들에게 삼포는 실재하는 지명이지만, 동시에 노스탤지어의 상징이다. 그들은 삼포가 변했을지라도, 여전히 그곳에서 위로와 소속감을 찾고 싶어 한다.

이것은 상실과 불안을 극복하려는 심리적 자기 치유의 한 방식이다. 즉, 노스탤지어는 단순한 감상이 아니라, 생존의 심리학으로 기능한다.

 

 

6. [삼포 가는 길] 속 인물 분석

6-1. 정씨 ― 떠돌이의 불안

정씨는 도시를 전전하며 안정된 삶을 구축하지 못한다. 그의 귀향은 단순히 장소로의 복귀가 아니라, 상실된 자아를 찾기 위한 심리적 귀환이다.

6-2. 영달 ― 현실과 이상 사이의 혼란

영달은 도시 노동자로 살아가지만, 그 속에서 정체성을 찾지 못한다. 그는 귀향을 통해 자신이 누구인지 다시 확인하려 한다. 그러나 귀향이 현실적 해결책이 아님을 알기에 끊임없이 혼란을 겪는다.

6-3. 백화 ― 여성적 고독과 귀향의 의미

백화는 도시에서 여성으로서 겪는 소외와 차별 속에 고통받는다. 그녀의 귀향은 단순히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존엄과 안전을 찾는 과정이다.

 

 

7. 현대 사회와 [삼포 가는 길]의 시사점

[삼포 가는 길]은 1970년대 산업화 시대의 이야기지만, 오늘날에도 깊은 울림을 준다.

  • 이주 노동자들은 여전히 고향과 단절된 채 낯선 땅에서 소외와 고립을 겪는다.
  • 청년 세대는 불안정한 노동 환경 속에서 귀속감을 상실하고, 고향이나 과거의 기억 속에서 위안을 찾는다.
  • 노년 세대는 산업화와 도시화로 상실된 공동체적 유대 속에서 과거의 시절을 그리워한다.

즉, [삼포 가는 길]은 특정 시대의 서사이자, 시대를 초월한 인간 보편의 심리학적 이야기다.

 

 

8. 결론: 귀향의 길은 어디에 있는가

[삼포 가는 길]은 단순한 귀향의 서사가 아니다. 그것은 상실된 존재들이 스스로의 정체성과 삶의 의미를 되찾으려는 심리적 여정이다.

  • 상실: 고향, 정체성, 공동체의 상실은 인간에게 깊은 우울과 불안을 남긴다.
  • 귀향 본능: 인간은 불안할 때 본능적으로 안전했던 과거와 고향을 찾는다.
  • 노스탤지어: 과거를 회상하는 심리는 단순한 향수가 아니라, 현재를 버티게 하는 심리적 기제다.

하지만 작품은 귀향조차 더 이상 완전한 위로가 되지 않음을 보여준다. 변화된 삼포는 더 이상 과거의 삼포가 아니다. 결국 진정한 귀향은 외부의 장소가 아니라, 내면에서 상실을 받아들이고 자기 정체성을 회복하는 과정임을 시사한다.

[삼포 가는 길]은 우리 모두에게 질문을 던진다.
“당신에게 고향은 어디입니까?”
“당신은 어떤 방식으로 상실을 견디고 귀향을 꿈꾸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