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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심리

[순이 삼촌] 속 집단 학살 트라우마와 침묵의 세대 심리학

[순이 삼촌] 속 집단 학살 트라우마와 침묵의 세대 심리학

 

1. 서론: 기억되지 못한 상처와 침묵의 역사

현기영의 [순이 삼촌]은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참혹했던 사건 중 하나인 제주 4·3 사건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이 소설은 한 가족이 겪은 개인적 상처를 넘어, 한 사회와 공동체 전체가 겪은 집단적 트라우마를 드러낸다. 그러나 작품 속 인물들은 자신이 겪은 고통을 쉽게 말하지 않는다. 고통은 기억되기보다 침묵 속에 묻히고 세대 간에 암묵적으로 전해진다.

심리학적으로 이는 단순한 개별적 외상이 아니라 집단적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더불어, 세대 간에 전이되는 ‘침묵의 심리’ 현상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순이 삼촌]이 보여주는 집단 학살의 심리학적 의미와, 침묵이 세대 간에 어떤 방식으로 이어지는지를 분석한다.

 

 

2. 작품 줄거리와 맥락

[순이 삼촌]은 제주 4·3 사건의 참상을 개인적 이야기로 풀어낸다. 순이의 삼촌은 무고하게 학살을 당한다. 가족들은 이 사건으로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안고 살아가지만, 그 상처는 결코 외부로 드러나지 않는다. 피해자와 유족들은 당시 국가 폭력의 두려움 속에서 입을 다물고 살아야 했다.

이 침묵은 단순한 ‘잊음’이 아니다. 오히려 지속적인 기억과 공포가 내면에 각인된 상태이다. 가족들은 그 고통을 자녀 세대에게 직접적으로 이야기하지 않지만, 침묵 자체가 하나의 기억 전달 방식으로 작용한다.

 

 

3. 집단 학살과 트라우마의 심리학

3-1.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증상

학살과 같은 극단적 폭력을 경험한 사람들은 흔히 PTSD 증상을 보인다. 이는 다음과 같은 특징으로 나타난다.

  • 반복적 악몽과 플래시백
  • 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상황 회피
  • 무력감, 죄책감, 수치심
  • 지속적인 경계심과 불안

[순이 삼촌] 속 인물들도 바로 이러한 증상을 겪는다. 그들은 기억을 떠올리기조차 힘들고, 오히려 침묵을 통해 스스로를 보호하려 한다.

3-2. 집단 트라우마

정신분석학자 카이 에릭슨(Kai Erikson)은 집단적 폭력이 공동체에 미치는 심리적 상처를 ‘집단 트라우마’라고 설명한다. 이는 개인적 외상을 넘어, 공동체 전체의 정체성과 기억을 훼손한다. 제주 4·3 사건은 제주도민 전체에게 ‘함께 기억하지만 말할 수 없는 상처’로 남았다.

 

 

4. 침묵의 세대 심리

4-1. 트라우마의 세대 간 전이

심리학자 다니엘 시걸(Daniel Siegel)은 트라우마가 직접적인 언어가 아니라 비언어적 방식으로 다음 세대에 전이된다고 말한다. 부모 세대가 겪은 공포와 억압은 침묵, 억눌린 감정, 불안정한 애착을 통해 자녀 세대에게 전달된다.

[순이 삼촌]의 가족들은 직접적으로 사건을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침묵 속에서 느껴지는 긴장감, 금기의 분위기가 고스란히 다음 세대로 이어진다. 이로 인해 후세들은 설명할 수 없는 불안과 정체성의 혼란을 경험한다.

4-2. 침묵과 수치심

사회학자 제프리 알렉산더는 집단 학살이 발생했을 때, 피해자 집단이 종종 ‘말할 수 없는 수치심’을 공유한다고 지적한다. 피해자들은 잘못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침묵 속에서 스스로 죄의식을 내면화한다.

순이 삼촌의 유족들 역시 침묵 속에서 살면서 자신들의 피해 경험이 정당한지조차 의심한다. 이는 국가 폭력이 낳은 2차적 트라우마라 할 수 있다.

 

 

5. 노출되지 않는 기억과 문학의 역할

5-1. 억압된 기억의 문제

프로이트는 억압된 기억이 결코 사라지지 않고, 다양한 방식으로 증상화된다고 보았다. 침묵으로 덮은 집단적 학살의 기억은, 후대의 불안, 갈등, 정체성 문제로 표출된다.

5-2. 문학적 증언

[순이 삼촌]과 같은 문학은 침묵의 장막을 걷어내고, 말할 수 없었던 기억을 사회적 언어로 환원하는 역할을 한다. 문학은 단순히 사건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억압된 기억을 해방하고 공동체가 치유의 길로 나아가도록 돕는다.

 

 

6. 집단 트라우마의 현대적 의미

6-1. 세월호 사건과의 유사성

현대 사회에서도 집단적 참사 이후 피해자와 유족들이 겪는 심리는 [순이 삼촌]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세월호 참사 이후 유가족들은 오랫동안 사회적 낙인과 침묵의 압박을 받아야 했다.

6-2. 기억과 치유

심리학 연구는 공동체적 차원의 기억 작업과 애도 과정이 집단 트라우마 치유에 필수적임을 보여준다. 말하지 못하게 막는 억압은 고통을 증폭시키지만, 기억을 공유하는 과정은 상처를 치유하고 정체성을 회복하는 길이 된다.

 

 

7. 결론: 침묵을 넘어 기억으로

[순이 삼촌]은 단순한 역사 소설이 아니다. 그것은 집단 학살의 심리학적 기록이며, 침묵의 세대 심리를 보여주는 사회적 증언이다.

  • 집단 학살은 단순한 개인적 상처가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정체성을 훼손하는 집단 트라우마를 남긴다.
  • 침묵은 상처를 덮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그것을 다음 세대에까지 전이하는 심리적 메커니즘으로 작동한다.
  • 문학은 침묵을 해체하고, 억눌린 기억을 사회적으로 환원함으로써 집단 치유의 가능성을 연다.

[순이 삼촌]은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어떤 침묵을 이어받았는가?”
“그 침묵을 말로 바꿀 용기가 있는가?”

집단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한 첫걸음은 침묵을 깨고, 기억을 공유하는 것이다. [순이 삼촌]은 바로 그 기억의 시작점이자, 치유의 언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