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낯선 기회의 유혹, 돌아올 수 없는 해방선언
청춘은 흔히 희망과 절망, 도전과 회의가 겹겹이 뒤얽힌 감정의 소용돌이다. 장류진의 첫 장편소설 [달까지 가자]는 2030 세대가 느끼는 불안과 그 불안을 임시적으로 달래기 위한 현실 도피 충동을 가상화폐 코인 투자라는 소재로 생생하게 그려냈다.
평범한 회사원인 주인공 다해와 동료들—은상, 지송—은 삶의 기회가 막힌 흙수저로서, 코인이라는 불확실한 유토피아에 ‘텔레포트’를 시도한다. 이 소설은 ‘달까지 가자’라는 도전적 슬로건 속에 현실의 불안을 희망으로 포장하며, 결국엔 또 다른 불안으로 귀결되는 욕망의 순환을 섬세하게 보여준다.
이 글에서는 [달까지 가자]에서 드러난 청춘의 불안, 현실 도피 심리, 그리고 투자 열풍에 숨겨진 정서적 방어 기제를 심리학적으로 분석하고자 한다.
1. 청춘의 불안: 불안의 본질과 심리 구조
청춘은 기약 없는 터널이다
다해와 은상, 지송은 모두 잡화점 아르바이트, 장시간의 버스 이동, 불안정한 계약직 등 예측 불가능하고 불안정한 환경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이들의 상황은 단순한 경제적 어려움에 그치지 않고,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과 직결된다. ‘청춘은 불안정의 대명사’라는 말은 이들에게 현실적인 경고처럼 다가온다. 안정적인 기반 없이 시작한 사회생활은 목표 설정 자체를 어렵게 만들며, 목표가 없으니 동기 부여도 점점 줄어든다. 이처럼 불안과 무기력의 악순환은 청춘의 심리적 소진을 가속화한다.
자존과 불안의 부조화
물가 상승 속에서 커피 한 잔, 케이크 한 조각, 단정한 옷차림 같은 사소한 소비조차 신중한 계산이 필요한 현실은, 자신을 위한 작은 보상조차 ‘사치’로 느껴지게 만든다.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위해 쓰는 시간과 돈이 필요하지만, 재정적 제약은 이를 허락하지 않는다. 심리학적으로 이는 인지적 부조화(cognitive dissonance)를 심화시키며, ‘나는 이렇게 살고 싶다’와 ‘현실이 허락하는 나’ 사이의 간극이 커진다. 이러한 부조화는 결국 현실을 벗어나고 싶은 강한 욕구를 만들고, 이 욕구가 고위험·고수익의 투자—즉, 코인 투자—로 이어진다.
이들에게 코인은 단순한 돈벌이 수단이 아니라, 불안정한 현재를 단숨에 뒤집을 수 있는 상징적 장치다. 하루아침에 계좌 숫자가 변하는 경험은, 통제 불가능한 현실 속에서 잠시나마 ‘내가 상황을 통제한다’는 착각을 준다. 그러나 이 착각이야말로 청춘 불안을 더욱 심화시키는 역설적 함정이다.
2. 현실 도피와 코인 투자: 새로운 신념의 순간
코인은 꿈이자 탈출구
다해, 은상, 지송에게 가상화폐는 단순한 투자 상품이 아니라 현실의 벽을 뛰어넘을 수 있는 ‘비밀 통로’다. 매일 반복되는 직장 업무, 불투명한 미래, 끝없는 경제적 압박 속에서 코인은 단기간에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환상을 제공한다. 가격 그래프가 치솟을 때의 쾌감은 도파민 분비를 자극하며, 심리적으로 현실에서 느낄 수 없는 강렬한 ‘성취감 착시’를 준다. 이는 심리학에서 말하는 즉각적 보상(instant gratification)의 전형적 사례다.
도피인가, 자기 보상인가
점심시간마다 모여 투자 수익을 확인하고, 평소에는 엄두도 내지 못했던 디저트를 사 먹으며 웃는 장면은 단순한 소비가 아니라 정서적 보상의 상징이다. 코인을 통해 얻은 수익(혹은 수익 기대감)은 ‘나는 무기력한 사람이 아니다’라는 자기 서사를 가능하게 한다. 하지만 이는 불안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불안을 잠시 덮어두는 심리적 마취일 뿐이다.
신념의 순간과 심리적 위험
“이번이 아니면 기회는 없다”는 생각은 투자에 몰입하게 만드는 심리적 압박이자, 도박 심리와 맞닿아 있다. 코인 투자로 얻는 순간의 해방감은, 현실을 변화시키는 실질적 기반이 아닌, 위험을 동반한 불안정한 희망이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이들은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대신, 점점 더 도피적 선택에 의존하게 된다. 결국 ‘현실 도피’는 자유가 아니라, 또 다른 형태의 속박이 될 위험을 내포한다.
3. 심리적 해방의 감각과 그 이면
희망은 있지만 불안도 지워지지 않는다
“이건 행복한 해피엔딩이다”라는 소설 말미의 평가는 달콤하지만, 작가는 그 이상의 불안감을 의도적으로 남긴다. '설탕에 담긴 듯한 해피엔딩'은, 허망한 희망은 또 다른 불안으로 전환될 수 있음을 암시한다.
실체 없는 희망의 무게
코인은 실제 소유 여부가 아니라, ‘가능성의 상상’을 자극하는 매개체일 뿐이다. 독자는 그들이 벌어지는 이야기 속 희망에 공감하지만, 동시에 현실로 돌아왔을 때 무엇이 남을지 질문하게 된다.
4. 인간 관계의 손상과 심리적 외로움
공동의 도피, 그러나 각자의 고독
다해·은상·지송은 서로를 의지하며 투자에 뛰어들지만, 결국 각자는 내면의 공허감과 마주한다. 공동체적 연대가 아니라, 현실 도피의 공명체로 기능하는 관계라는 점이 이들의 심리를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
회피와 정서적 불안정의 갈등
윤리, 안정, 미래—이 모든 것이 갈등의 중심에 서지만, 이들은 당장의 희망을 선택한다. 이 선택은 감정의 착시일 뿐이며, 심리적으로는 통제되지 않는 불안과 도망의 반복 사이의 경계선에 서 있는 상태다.
5. 결론: 불안과 도피의 시대, 문학이 던지는 질문
[달까지 가자]는 작위적인 성공담이 아니다. 현실의 불안을 꿈으로 매꾼 청춘들의 뚜렷한 감정선을 통해, 우리 시대의 불안 구조와 심리 회로를 들여다보는 거울이다. 그들처럼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가는 사랑”, “내가 쥐고 싶은 시간”을 꿈꾸지만, 현실이 그것을 쉽게 허락하지 않을 때,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하는가를 묻는다.
이 소설은 묻는다.
- 청춘의 불안은 어떻게 형성되는가?
- 현실 도피가 아닌, 현실과 나를 회복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달까지 가자]는 단지 코인 투자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불안의 무대 위에서 우리 모두의 마음이 어떻게 흔들리고, 그 흔들림 속에서 살아남는지를 그린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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